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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2011/12/02 12:19
지구에서 최고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꼰대 상사도 부하 직원과 자식에게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한다.
세상이라는 불완전한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소위 '현실'을 핑계 삼지 않고 순수한 악을 자처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선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글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끊임없는 자기 반성이 필요한 거다. '어쩔 수 없었잖아요' 라는 주변의 적당한 평가에서 위안을 얻는 것에 안주하며 서서히 괴물이 되어 가지 않기 위해선, 자신을 스스로 경멸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정말로 그것이 어쩔 수 없었는지 반추해볼 여지는 늘 남겨두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미덕은 누군가를 설득시키기 위한 확고하고 명확한 핑곗거리가 아니다. 부끄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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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인호
영화2011/08/25 10:26

근대의 전쟁이란 복잡 기괴한 비즈니스인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무엇이나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다소간이라도 알고 있는 자도 드물다. -프랑크 녹스


세상에 딱 두 종류의 전쟁영화가 있다 치자. 각종 살상무기의 화력전이 볼거리로 소비되고 어김없이 영웅이 존재하는 유희물 성격의 영화와 그곳에서 죽어나간 누군가 들의 비극을 조명하는 반전(
反戰)영화.

'고지전'은 철저하게 후자에 영역에서 나름의 확고한 획을 긋는 영화다. 물론 전쟁의 광기에 미쳐가는 인간의 심리나, 개개인의 비참하고 무의미한 죽음을 성찰한 영화는 이미 적지 않다. 새로운 시각이란 측면에서만 평가할 때 '고지전'의 성과는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비극적 체험의 체감 온도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여야 하는 비극적 현실과 지도를 사이에 두고 땅따먹기 게임을 벌이는 비극의 장본인들과의 대비시키는 연출은, 승패로써만 기억되는 역사 속의 전쟁이 아닌 전쟁 그 자체의 끔찍한 본질을 그 어떤 구구절절한 사연보다도 설득력있게 표현한다. 예정된 비극으로 향하는 여정 사이에, 다소 우연에 기대는 설정이 남발되는 단점이 보이긴 하나, 그간 한국전쟁을 소재로 했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이 영화가 이루는 완성도는 탁월한 수준이다.

시쳇더미로 뒤덮여 폐허가 된 고지를 비추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래서 결국 누가 이기고 누가 살아남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 영화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어느 훌륭하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린다는' 헛소리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까. '고지전'은 그저 인류가 벌일 수 있는 최악의 미친 짓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었는지, 죽어서 벗어나거나 살아서 괴물의 탈을 써야 하는 무간 지옥에 영문도 모른 채 갇혀버린 이들의 순수한 비극 그 자체에 대해서만 집중한다. 그건 영광스런 승리가 아니라 단지 악몽 같은 역사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피를 토한다. 스크린 너머 쓰러져가는 이들의 잘려나간 팔다리와 피보다, 눈물이 뜨거웠던 이유다.

흥행 성적으로나 영화 자체의 완성도 모두 흥미로웠던 두 전작에 이어, 손익분기점을 무난하게 통과하리라 예상되는 '고지전'에 이르러, 주목받는 신인 감독이었던 장훈은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연출가로서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상업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 대해 이 정도의 성찰을 보이는 작품은 흔치 않다.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1. 결정적인 장면들에서 발성이 아쉽긴 했지만 신예 이제훈의 아우라는 주목할만 하다. 좋은 배우가 될 것이다.

#2. 사소한 딴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극 중 유약한 이미지의 고수가 변해가는 모습을 상징하기 위해 안경을 벗게 되는 설정이 있는데, 이건 한 번이라도 사격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설정. 혹시 그 시절에 렌즈가 있었던가.

#3. 그 배역이 꼭 김옥빈이어야 했을까.

#4. '고지전'의 제작비는 130여억원. 이 경우 손익 분기점은 관객수 430만 정도라고 한다.

#5. 내용 추가. 8월25일 현재 기준 고지전의 관객수는 300만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끝물로 돌아선 분위기다. 
아무래도 대중적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과격한 정서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흥행 성공작으로 남긴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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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인호
영화2011/08/08 12:59
쓸데없는 이야기로 흐름을 망가뜨리지 않는 간결한 서사구조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 탄탄한 전개.

두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 타임 중에, 인물 배경과 감정 이입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담고 있는 도입부 이후 클라이맥스까지 거의 한 호흡으로 진행되는 전개에서, 서스펜스를 유지하기 위해 배치한 도구들에 약간의 무리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 정도.

무엇보다 점이 아닌 선으로 느껴지는 활이라는 동적인 도구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액션장면들은, 긴장감과 후련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카타르시스 형성 능력이 근래 몇 년간 보았던 액션물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수준이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환상 아래 헐리웃 흉내 내기에 급급하는 수준 이하의 액션물들이나, 애국주의 감성 마케팅에 집착하다 본연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마는 사극 작품들의 부진 가운데에서, 우직하고 튼튼한 만듦새로 영리하게 제 위치를 확보하는 웰메이드 사극 액션물.


#1 - '활'이라는 이미 그 자체로 근사한 제목을 두고, '신기전'같은 영화에나 어울리는 저 손발 오글거리는 수사를 기어이 제목에 붙여버린 (아마도) 마케팅 담당자에게는 유감을 표할 수 밖에 없겠다. '과속스캔들'을 넘어서서 작명 넌센스 1위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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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인호